㈜ 청년열정마라두바이쫀득민트초코손맛푸드
15.3K subscribers
35.7K photos
825 videos
9 files
16.5K links
본인의 개인적인 취향을 큐레이팅하는 채널.

꼭 필요한 연락 : @flarrs
Download Telegram
이거 댓글창 열어보면 온통 욕밖에 없어요.
님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지 않나요?


20년간 싸게 살게 해주는 조건으로 들어와서,
20년 꽉 채워 살아놓고는...
이제와서 책임지라는 글을 쓰는게 말이에요.
무슨.. 애시당초 말안되는 개씨발 도둑놈 마인드로 읽히겠지만 놀랍게도 한국에선 역사적으로 늘 주거문제만큼은 "어떻게든 해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저분들은 20년 끝날 때쯤 되면 어떻게든 해줄거라고 생각한거지... 인원도 한둘이 아니니깐. (저분들이 옳다 그르다 얘기가 아님)

짧게 살았던 여러분들을 위해, 시간축을 한 백년정도로 늘려서 그동안 조선의 도읍 한양에서 있던 일들을 살짝 살펴볼까요?
❤2
지금의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이거 내라고 읽는게 아님.. 랜드 앤 하우징임..) 는 다들 아시죠?

이명박정권때 주택공사랑 토지공사랑 합쳐졌는데 이거 역사가 무려 왜정때부터로 이어진다
질문. 그런데 조선시대 서울은 어땠을까?

그때도 이렇게 주택란이나 인구 과밀화등이 심했을까?
소시적 중고딩때 갈고닦은 학문에서 답이 나옵니다.

조선시절엔 상공업이 그렇게 발달안하고, 기본적으로 농업이 베이스였기 때문에 굳이~ 한양와서 살 이유가 그렇게 없었어요. 그냥 조상님들 사시던 지역에서 밭갈고 논에 씨뿌리며 애낳고 살다가 물려주고 가는거지..

염병이 돌거나 기근이 들거나 하면 모를까, 양인들이 일부러 한양 올라올 일은 잘 없었다고 해요. 평생 살도록 도읍땅 한번 안밟아본 사람도 많았던거지
TMI지만, 서울이 이렇게 커진건 진짜 불과 얼마전 일이고 예전엔 서울이 정말 작기도 했어요.

우덜땐 사대문밖 10리정도까지만 서울로 쳐줬다... 이걸 '성저십리'라고 해요. 지금 서울 대부분은 사실 서울이 아니었던거지 압구정 강남 이런곳도 최근까진 소로 쌀심던 논밭이었고...
이 유명한 사진이 1978년 압구정을 찍은 사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쓰여지던 시절에는 이제 막 압구정에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하던 격동의 시절로... 그 이전엔 이동네도 죄 논밭이었어요.

당시엔 강남이란 단어도 없었고, 강남 인근 이 좆시골동네들은 '영동'이라는 단어로 퉁쳐서 불렀는데, '영등포의 동쪽'이라서 영동이라는 단어로 불렀다가 지금은 서울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불과 50년만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이죠

(원래 경기도였던 강남이 서울이 된것도 박정희때 있던 일.. 무슨 조선시절 이럴 때 있던 일이 아니에요)
1❤1
어어 쓰발 슬슬 조는 사람 나오는거같은데..
왜정때부터 조선은 뭐가 달라졌느냐...


이당시 일본이 전세계랑 전쟁하느라 물자를 전초기지인 한국에서 만들기 시작합니다. 일자리 수요가 서울에 많이 생김과 동시에.. 토지수탈로 인해 먹고살 길이 묘연해진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뭐 주거가 있었겠나요? 원래 조선때부터 불법 주거가 꽤 많았고, 이쯤부터는 더더욱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1925년 서울의 세대수가 6만 7,530세대였는데, 그로부터 20년 후, 해방될 때 즈음에는 22만 938세대로 3배가 넘게 증가했다는 거에요... 고작 20년동안 조선 인구가 확 늘었을까요? 그냥 서울에 몰려버린 것이겠죠.
❤3
서울내 불법주거문제는 저때부터 시작해서 사실 아직도 해결이 안된 문제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을 만들 때도 유교기반 법이 들어갈만큼 뼈속깊은 유교기반 국가고.. 불법주거한다고 이 사람들을 싹 다 내칠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옛날부터 이 사람들을 위한 복지를 깔고 들어갈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무엇이냐
❤1
이게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에 나오는 '딱지'라는 거에요.

기존에 불법으로 살던 사람들을 그냥 쪼까내는건 아니고, 판자촌을 허물고 새로 지어지는 주거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를 불하해줬는데 그게 소위 "딱지"라고 부르던이 특별분양권이에요.

이걸 사실 법리적으로 꼭 줘야하는 것은 아니되, 나라에서도 고도성장시기 쭉쭉 개발을 진행하며 이걸로 편의성과 명분을 챙길 수 있었어요. 물론 부작용도 많았는데,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엔딩을 기억하겠지?

이 흐름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며 아파트가 무적인 흐름이 이어져온건데, 이 부분도 좀 설명하자면..
❤1
아파트는 어쩌다 무적의 자산군이 되었는가
❤1
이게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에요.


처음에 부자들은... 아파트 안갔음.

처음부터 아파트가 환영받던 주거형태는 아니였던게.. 평생을 1층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그리고 마당에 김장독도 묻어야하고 창고도 필요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콘크리트로 쌓은 탑에 포개져 살라고 하면 달가워했을까요?


그럼 김장독은 어디에 묻어..? 잠깐 나갔다 오려면 계단을 5층까지 오르내려야해? 야채는 어디에 심어..?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얘기가 달라진거지.

아파트단지들이 위치하는 곳들이 폭발적으로 오르기 시작하고, 거기가 중심지가 되고, 몰려살다보니 거기에 온갖 편의시설이나 학군등도 몰리고 교통등도 그쪽 위주로 개발되고...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북쪽이 압도적으로 잘살고, 인식도 더 좋았어요. (한 7~80년대까진)

그렇지만 나라에서도 경기고 휘문고 서울고 서울대등을 강남으로 옮겨버리며 8학군같은게 생기고, 도로나 지하철 개발등도 더 후끈하게 하며 개발되다 보니...

당시 애매하게 중산층이라 강북에서 주택살던 사람들은, 오히려 새로 논밭 위에서 개발되는 아파트 샀던 사람들의 가치상승분을 절대 따라잡지 못하게 된거죠. 😊
Please open Telegram to view this post
VIEW IN TELEGRAM
❤1
(지금도 한국의 소위 올드머니라는 사람들은 우리 기준으로는 이상한 외진 곳(?)에 사는데,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강남이 경기도였던건 왠지 아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잠실이 얼마전까지 섬이었던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

이것도 70년대쯤 육지로 바뀜.

당시 이런걸 알았으면 이런데 살고싶었겠냐고..


강남이랑 잠실은 맨날 홍수나고 물에 잠기고.. 이런 뉴스만 신문으로 읽던 동네임 원래 서울도 아니었고..

원래 뼈대있는 집안일수록 사대문 안에 살아야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절대 이런데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3
그런데 이당시에도 먹고 살만한 놈들이나 이런 배부른 소리한거지,

아파트 청약의 인기는 엄청났어요. 왜냐,
이 당시 지어지던 아파트들은 순수한 시장상품이라기보단 나라에서 택지를 조성하고, 금융을 조달해주고 분양가나 공급대상 등을 조정해서 만들어주는 준복지적 혜택에 가까웠어요.

거주문제를 해결해야하니 무주택자, 서민등에게 저렴하게 분양을 해준거지 (LH가 레전드 적자에 늘 허덕이는 이유).

그런데 분양 이후에는 공공적 성격을 떠나, 시장논리에 가격이 맡겨지다보니 초반부터 가격은 너무너무 잘 오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