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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켄밀러: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라
(조지 소로스와 영국은행을 무너뜨린 사나이로 불리며 단 한 해도 손실 없이 30년 간 연평균 30% 성과를 거둠)
"내가 생각하는 리스크 관리 방식은 좀 비정통적이야. 나는 모든 달걀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걸 좋아하고, 대신 그 바구니를 아주 조심히 지켜보지.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영대학원에서는 ‘위험 조정 수익률’이나 ‘분산 투자’라는, 내 생각에 말도 안 되는 이론을 가르친다고 봐.
펀드매니저로서 보통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30-40개에 분산 투자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70-80% 고작 두세 개 투자 아이디어에서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어.
그래서 내 개념은 이래 — 내가 가장 확신을 갖고 있는 그 두세 개 아이디어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자.
나는 운 좋게도 다양한 자산군을 넘나들며 거래할 수 있었어. 원자재, 통화, 채권, 주식까지 다뤘거든. 이 덕분에 내가 주식 쪽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 땐, 아예 주식은 들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훈련된 태도를 가질 수 있었지. 채권도 마찬가지였어.
즉, 화살이 많이 꽂혀 있는 화살통을 가지고 있으면, 그중 하나쯤은 정말 많은 돈을 실을 만한 아이디어가 생기게 돼.
그리고 내가 추가로 말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현재'만을 본다는 점이야. 하지만 현재는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어. 투자자는 틀을 벗어나서(out of the box) 생각해야 해. 지금으로부터 18~24개월 뒤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그때 어떤 종목이 어떤 가격에 거래될지를 상상해야 해.
"어떤 기업이 과거에 얼마를 벌었는가"는 사실 거의 아무 의미 없어. 정말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 기업이 얼마를 벌 거라고 ‘믿는가’야. 그리고 만약 네가 앞으로 2년 안에 시장 컨센서스와 완전히 다른 어떤 걸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돈 버는 방식이야.
내 첫 번째 상사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
‘명백한 건 대개 틀렸다(The obvious is obviously wrong).’ 만약 네가 시장의 '흔한 상식'을 믿고 투자한다면, 결국 큰 손실을 입게 될 거야."
#NARRATIVE
(조지 소로스와 영국은행을 무너뜨린 사나이로 불리며 단 한 해도 손실 없이 30년 간 연평균 30% 성과를 거둠)
"내가 생각하는 리스크 관리 방식은 좀 비정통적이야. 나는 모든 달걀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걸 좋아하고, 대신 그 바구니를 아주 조심히 지켜보지.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영대학원에서는 ‘위험 조정 수익률’이나 ‘분산 투자’라는, 내 생각에 말도 안 되는 이론을 가르친다고 봐.
펀드매니저로서 보통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30-40개에 분산 투자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70-80% 고작 두세 개 투자 아이디어에서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어.
그래서 내 개념은 이래 — 내가 가장 확신을 갖고 있는 그 두세 개 아이디어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자.
나는 운 좋게도 다양한 자산군을 넘나들며 거래할 수 있었어. 원자재, 통화, 채권, 주식까지 다뤘거든. 이 덕분에 내가 주식 쪽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 땐, 아예 주식은 들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훈련된 태도를 가질 수 있었지. 채권도 마찬가지였어.
즉, 화살이 많이 꽂혀 있는 화살통을 가지고 있으면, 그중 하나쯤은 정말 많은 돈을 실을 만한 아이디어가 생기게 돼.
그리고 내가 추가로 말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현재'만을 본다는 점이야. 하지만 현재는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어. 투자자는 틀을 벗어나서(out of the box) 생각해야 해. 지금으로부터 18~24개월 뒤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그때 어떤 종목이 어떤 가격에 거래될지를 상상해야 해.
"어떤 기업이 과거에 얼마를 벌었는가"는 사실 거의 아무 의미 없어. 정말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 기업이 얼마를 벌 거라고 ‘믿는가’야. 그리고 만약 네가 앞으로 2년 안에 시장 컨센서스와 완전히 다른 어떤 걸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돈 버는 방식이야.
내 첫 번째 상사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
‘명백한 건 대개 틀렸다(The obvious is obviously wrong).’ 만약 네가 시장의 '흔한 상식'을 믿고 투자한다면, 결국 큰 손실을 입게 될 거야."
#NAR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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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Goldman Sachs" 그들은 어떻게 역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해왔는가? (Source: Golmdan Sachs, FINAiUS, and other published analyses)
1. 1886~1914: 골드만삭스의 태동과 상업어음 비즈니스
1886년, 의류 사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둔 유대인 이민자 마커스 골드만은 금융업에 발을 들인다. 그는 소규모 기업들이 매출채권을 빠르게 현금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당시 은행 대출은 받기 어려웠고, 그는 이들 기업의 단기채권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한 뒤 더 높은 가격에 다른 투자자나 은행에 재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단기 대출이 훗날 '상업어음'으로 불리게 된다. 이때가 바로 투자은행 산업의 태동기였다. 상업은행이 보수적이고 안전한 자금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Goldman Sachs 같은 회사는 더 위험한 자금을 제공했다. 그래서 '투자은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0년 후, 마커스 골드만은 연간 약 3천만 달러 규모의 상업어음을 거래하는 수준까지 사업을 키워낸다. 그가 60세가 되었을 때는 이미 평균 수명을 넘긴 상태였다. 은퇴 후에도 가업이 번창하도록 하기 위해 그는 사위 사무엘 삭스를 파트너로 영입한다. 1896년, 삭스는 회사의 자본금을 5명의 파트너에게 분배되는 160만 달러 수준까지 키워낸다. 하지만 상업어음 발행과 거래 시장은 빠르게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선 다음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다.
2. 1897~1914: IPO 사업 진출과 리먼 브라더스와의 협업
19세기 말, 기업들은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당신이 비상장 회사라면, 즉 친구 몇 명과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가 상장하고 싶어질 때, 일반적으로는 투자은행에 찾아간다. 투자은행은 발행과정을 설계하고, 언더라이팅을 해준다. 당시 IPO는 유럽계 명문 투자은행들이 주도하던 엘리트 비즈니스였다. 유대계였던 골드만삭스는 이 업계의 '아웃사이더'였지만, 이 파트너십은 IPO 비즈니스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시작은 유대계 기업을 상장시키는 것.
1897년, Sears의 순자산은 25만 달러였지만 1905년에는 매출 3,700만 달러, 순이익 280만 달러를 기록하며 IPO 후보로 급부상한다. 하지만 시어스를 상장시키는 건 골드만삭스 단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또 다른 유대계 신흥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와 손을 잡는다. 둘은 시어스의 보통주 3천만 달러, 우선주 1천만 달러 규모를 인수한다. 이 딜을 통해 두 회사는 전례 없는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이후 다수의 기업들이 골드만삭스를 고객으로 삼게 되면서, 1914년에는 월가에서 유력한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시니어 파트너였던 헨리 골드만은 미 연방준비제도 설계자로 초청될 정도였다. 하지만 IPO는 경기순환형 비즈니스였다. 주식과 채권 발행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후, 골드만삭스는 이제 이 자금을 어떻게 재투자할지 고민하게 된다.
3. 1920~1929: 로어링 20스, 투자신탁 열풍, 그리고 대공황
마침내, 완벽한 타이밍이 온다. 1920년대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강세장이 펼쳐지는 '로어링 20스' 시기였다. 사람들은 경제적 낙원이 도래했다고 믿었다. 은행 대출도 손쉽게 받을 수 있었고, 모두가 낙관에 휩싸였다. 골드만삭스는 이런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본격적으로 투기 시장에 뛰어든다. 1백만 달러의 자본으로 'Trading Corporation'을 설립한 후, 이를 일반 대중에게 10배 가격에 판매하며 총 9,300만 달러를 조달한다. 이는 오늘날의 '스팩'과 매우 유사한 구조다. 본질적으로는 본인의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시장에서 엄청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이후 투자신탁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시장은 이 신탁을 사들이며 호황은 지속된다.
하지만 모든 호황은 끝나기 마련이다. 1929년 10월 29일. 역사상 최악의 금융 붕괴가 발생한다. 미국의 실업률이 폭증하고, 결혼률은 22% 하락, 자살률은 40% 상승한다. 골드만삭스의 트레이딩 코퍼레이션은 거의 전멸한다. 수억 달러가 증발했고, 파트너십은 1,300만 달러를 손실로 기록한다. 수백 개의 투자신탁이 파산하며 투자자들과 은행들을 끌어내린다. 그 와중에도 골드만삭스는 살아남는다. 고객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은 건 오직 한 남자 덕분이었다.
4.1930~1956: 시드니 와인버그, 바닥에서 정점으로
시드니 와인버그는 브루클린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11남매 중 셋째였다.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는 뛰어난 근면성과 인간관계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골드만삭스에서 청소부로 시작해 단 15년 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다. 정치인, CEO, 고위층 인맥을 만들며 투자은행 비즈니스 대부분을 골드만삭스로 끌어온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상장도 그의 작품이다. 와인버그는 고객을 끌고 오고, 회사를 재건하는 데 성공하자 이제 포드 모터스를 상장시키겠다는 불가능한 도전에 나선다.
5. 1956: 포드 IPO – 불가능을 현실로
1956년 당시 포드는 미국 2위 자동차 제조사였다. 상장을 성공시킨다면 그 수수료는 천문학적이었다. 하지만 창립자인 헨리 포드는 월가를 증오했고, 유대인 혐오자로 유명했다. JP모건조차 그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자인 헨리 포드 2세는 와인버그에게 우호적이었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포드 IPO의 주관사가 되는 데 성공한다. 월가 유대계 기업이 미국 최대 반유대주의 기업의 IPO를 맡게 된 것은 커다란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6. 1960~1980: 거스 레비와 트레이딩 시대의 시작
와인버그가 고객을 맡는 동안, 한 트레이더가 내부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키워낸다. 그의 이름은 거스 레비. 그는 장외 대량주식거래(Block Trading)의 선구자였다. 큰 규모의 주식을 매도하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레비는 투자자와 미리 가격을 협상해 할인된 가격에 매입한 후 시장에 점진적으로 매도해 차익을 남겼다. 이 시기에 시장은 비효율적이었고, 레버리지를 활용한 이러한 전략은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1960년대 말, 와인버그가 은퇴에 가까워지자 레비가 후계자가 된다. 이는 골드만삭스 역사상 최초로 '트레이더 출신'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레비는 회사를 트레이딩 중심 구조로 전환시키며, 큰 폭의 성장을 이끈다.
7. 1970~1980: 펜센트럴 스캔들과 골드만의 위기
하지만 트레이딩 규모가 커질수록, 골드만삭스는 더 큰 리스크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금융회사란 크기가 아무리 커도 단 하나의 실수로 무너질 수 있다. 골드만삭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8년, 펜실베이니아 철도는 뉴욕 센트럴 철도를 인수하면서 미국 최대의 철도회사인 '펜센트럴'이 탄생한다. 하지만 이미 12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었던 이 회사는 운영자금이 더 필요했다. 골드만삭스는 1억 달러 규모의 상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준다. 골드만삭스가 언더라이팅을 맡았고, 신용평가사도 높은 등급을 부여했기에 투자자들은 이 어음을 안전한 자산이라 믿고 기꺼이 매입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펜센트럴은 파산한다. 철도 인프라는 낡아가고 있었고, 수익은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상업어음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이들은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며 소송을 제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용평가사가 높은 등급을 부여한 이유는 바로 골드만삭스가 언더라이터였기 때문이었고, 골드만은 그 신용등급을 근거로 더 많은 부채를 밀어넣었던 것이다.
결국 법원은 골드만삭스가 투자자들에게 달러당 20센트를 보상하라고 판결한다. 사건은 시장에 경종을 울렸고, 골드만삭스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치러야 했다. 시장 환경이 악화되며 골드만삭스가 발행한 증권들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사태도 곧 닥칠 비극을 예고하지는 못했다.
#NARRATIVE
치열한 경쟁과 철저한 이기주의 속에서 단 한 회사가 100년이 넘도록 살아남았고, 그 결과 월가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동시에 존경과 증오를 받는 회사이다. 그들의 문화는 분명 냉혹함을 기르는 구조다. 잊지 마라. 골드만이 승자가 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패자가 되어야 한다.
1. 1886~1914: 골드만삭스의 태동과 상업어음 비즈니스
1886년, 의류 사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둔 유대인 이민자 마커스 골드만은 금융업에 발을 들인다. 그는 소규모 기업들이 매출채권을 빠르게 현금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당시 은행 대출은 받기 어려웠고, 그는 이들 기업의 단기채권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한 뒤 더 높은 가격에 다른 투자자나 은행에 재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단기 대출이 훗날 '상업어음'으로 불리게 된다. 이때가 바로 투자은행 산업의 태동기였다. 상업은행이 보수적이고 안전한 자금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Goldman Sachs 같은 회사는 더 위험한 자금을 제공했다. 그래서 '투자은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0년 후, 마커스 골드만은 연간 약 3천만 달러 규모의 상업어음을 거래하는 수준까지 사업을 키워낸다. 그가 60세가 되었을 때는 이미 평균 수명을 넘긴 상태였다. 은퇴 후에도 가업이 번창하도록 하기 위해 그는 사위 사무엘 삭스를 파트너로 영입한다. 1896년, 삭스는 회사의 자본금을 5명의 파트너에게 분배되는 160만 달러 수준까지 키워낸다. 하지만 상업어음 발행과 거래 시장은 빠르게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선 다음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다.
2. 1897~1914: IPO 사업 진출과 리먼 브라더스와의 협업
19세기 말, 기업들은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당신이 비상장 회사라면, 즉 친구 몇 명과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가 상장하고 싶어질 때, 일반적으로는 투자은행에 찾아간다. 투자은행은 발행과정을 설계하고, 언더라이팅을 해준다. 당시 IPO는 유럽계 명문 투자은행들이 주도하던 엘리트 비즈니스였다. 유대계였던 골드만삭스는 이 업계의 '아웃사이더'였지만, 이 파트너십은 IPO 비즈니스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시작은 유대계 기업을 상장시키는 것.
1897년, Sears의 순자산은 25만 달러였지만 1905년에는 매출 3,700만 달러, 순이익 280만 달러를 기록하며 IPO 후보로 급부상한다. 하지만 시어스를 상장시키는 건 골드만삭스 단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또 다른 유대계 신흥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와 손을 잡는다. 둘은 시어스의 보통주 3천만 달러, 우선주 1천만 달러 규모를 인수한다. 이 딜을 통해 두 회사는 전례 없는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이후 다수의 기업들이 골드만삭스를 고객으로 삼게 되면서, 1914년에는 월가에서 유력한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시니어 파트너였던 헨리 골드만은 미 연방준비제도 설계자로 초청될 정도였다. 하지만 IPO는 경기순환형 비즈니스였다. 주식과 채권 발행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후, 골드만삭스는 이제 이 자금을 어떻게 재투자할지 고민하게 된다.
3. 1920~1929: 로어링 20스, 투자신탁 열풍, 그리고 대공황
마침내, 완벽한 타이밍이 온다. 1920년대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강세장이 펼쳐지는 '로어링 20스' 시기였다. 사람들은 경제적 낙원이 도래했다고 믿었다. 은행 대출도 손쉽게 받을 수 있었고, 모두가 낙관에 휩싸였다. 골드만삭스는 이런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본격적으로 투기 시장에 뛰어든다. 1백만 달러의 자본으로 'Trading Corporation'을 설립한 후, 이를 일반 대중에게 10배 가격에 판매하며 총 9,300만 달러를 조달한다. 이는 오늘날의 '스팩'과 매우 유사한 구조다. 본질적으로는 본인의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시장에서 엄청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이후 투자신탁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시장은 이 신탁을 사들이며 호황은 지속된다.
하지만 모든 호황은 끝나기 마련이다. 1929년 10월 29일. 역사상 최악의 금융 붕괴가 발생한다. 미국의 실업률이 폭증하고, 결혼률은 22% 하락, 자살률은 40% 상승한다. 골드만삭스의 트레이딩 코퍼레이션은 거의 전멸한다. 수억 달러가 증발했고, 파트너십은 1,300만 달러를 손실로 기록한다. 수백 개의 투자신탁이 파산하며 투자자들과 은행들을 끌어내린다. 그 와중에도 골드만삭스는 살아남는다. 고객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은 건 오직 한 남자 덕분이었다.
4.1930~1956: 시드니 와인버그, 바닥에서 정점으로
시드니 와인버그는 브루클린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11남매 중 셋째였다.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는 뛰어난 근면성과 인간관계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골드만삭스에서 청소부로 시작해 단 15년 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다. 정치인, CEO, 고위층 인맥을 만들며 투자은행 비즈니스 대부분을 골드만삭스로 끌어온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상장도 그의 작품이다. 와인버그는 고객을 끌고 오고, 회사를 재건하는 데 성공하자 이제 포드 모터스를 상장시키겠다는 불가능한 도전에 나선다.
5. 1956: 포드 IPO – 불가능을 현실로
1956년 당시 포드는 미국 2위 자동차 제조사였다. 상장을 성공시킨다면 그 수수료는 천문학적이었다. 하지만 창립자인 헨리 포드는 월가를 증오했고, 유대인 혐오자로 유명했다. JP모건조차 그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자인 헨리 포드 2세는 와인버그에게 우호적이었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포드 IPO의 주관사가 되는 데 성공한다. 월가 유대계 기업이 미국 최대 반유대주의 기업의 IPO를 맡게 된 것은 커다란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6. 1960~1980: 거스 레비와 트레이딩 시대의 시작
와인버그가 고객을 맡는 동안, 한 트레이더가 내부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키워낸다. 그의 이름은 거스 레비. 그는 장외 대량주식거래(Block Trading)의 선구자였다. 큰 규모의 주식을 매도하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레비는 투자자와 미리 가격을 협상해 할인된 가격에 매입한 후 시장에 점진적으로 매도해 차익을 남겼다. 이 시기에 시장은 비효율적이었고, 레버리지를 활용한 이러한 전략은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1960년대 말, 와인버그가 은퇴에 가까워지자 레비가 후계자가 된다. 이는 골드만삭스 역사상 최초로 '트레이더 출신'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레비는 회사를 트레이딩 중심 구조로 전환시키며, 큰 폭의 성장을 이끈다.
7. 1970~1980: 펜센트럴 스캔들과 골드만의 위기
하지만 트레이딩 규모가 커질수록, 골드만삭스는 더 큰 리스크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금융회사란 크기가 아무리 커도 단 하나의 실수로 무너질 수 있다. 골드만삭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8년, 펜실베이니아 철도는 뉴욕 센트럴 철도를 인수하면서 미국 최대의 철도회사인 '펜센트럴'이 탄생한다. 하지만 이미 12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었던 이 회사는 운영자금이 더 필요했다. 골드만삭스는 1억 달러 규모의 상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준다. 골드만삭스가 언더라이팅을 맡았고, 신용평가사도 높은 등급을 부여했기에 투자자들은 이 어음을 안전한 자산이라 믿고 기꺼이 매입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펜센트럴은 파산한다. 철도 인프라는 낡아가고 있었고, 수익은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상업어음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이들은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며 소송을 제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용평가사가 높은 등급을 부여한 이유는 바로 골드만삭스가 언더라이터였기 때문이었고, 골드만은 그 신용등급을 근거로 더 많은 부채를 밀어넣었던 것이다.
결국 법원은 골드만삭스가 투자자들에게 달러당 20센트를 보상하라고 판결한다. 사건은 시장에 경종을 울렸고, 골드만삭스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치러야 했다. 시장 환경이 악화되며 골드만삭스가 발행한 증권들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사태도 곧 닥칠 비극을 예고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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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Goldman Sachs" 그들은 어떻게 역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해왔는가?
8.1976: 거스 레비 사망과 새로운 리더십
겉보기엔 막강해 보였던 거스 레비도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출장 중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회사 전체가 충격에 빠진다. 후임 계획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모두가 존경하던 단 한 명의 인물을 떠올렸다. 바로 존 화이트헤드였다.
9.1976~1983: 존 화이트헤드와 윤리강령의 시대
하버드 출신에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사령관이기도 했던 화이트헤드는 D-Day 작전에 참여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직감했다. "이제 골드만삭스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는 회사를 군대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모두가 동일한 윤리 기준과 행동강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는 어느 일요일 노트에 '우리가 우리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메모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훗날 골드만삭스의 '14가지 비즈니스 원칙''으로 이어진다. 그중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화이트헤드는 고객의 이익을 중심에 둔 업무 표준화를 추진했고, 이를 철저히 이행했다. 그리고 그는 직원들에게 가르쳤다. "언젠가 당신은 억만장자 고객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당신을 로비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화이트헤드의 리더십은 단순히 골드만삭스를 수익성 있는 회사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고객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회복하게 했다.
10. 2000~2006: 모기지 붐과 골드만의 본격적인 베팅
2000년대 초반, 미국 주택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는다. 모든 미국인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쫓으며 주택을 사들이고,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 꿈을 '상품화'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모기지 담보부 증권''이다. 골드만삭스도 이 거대한 흐름에 올라탄다. 단순히 중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본으로 대규모 포지션을 취하며 공격적으로 수익을 노렸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골드만은 2,030억 달러 규모의 MBS를 인수한다.
당시 CEO였던 행크 폴슨은 이러한 성과를 정점으로, 재무장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한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은 로이드 블랭크파인. 그는 트레이더 출신답게, 더욱 공격적인 수익 추구 전략을 펼친다. 골드만삭스는 이제 거의 '헤지펀드에 가까운' 회사로 변모해 있었다.
자기 자본으로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며, 클라이언트보다 자기 거래가 중심이 되는 구조였다. 고객 중심 철학은 점점 흐려졌고, 시장은 호황을 구가하며 이런 변화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11. 2007~2008: 서브프라임 위기와 골드만의 생존 전략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저신용자 대상) 대출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연체율이 치솟고, 수많은 모기지 회사들이 줄도산한다.
골드만삭스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위기를 감지했다. 2006년 말, 내부적으로 이미 모기지 시장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고, 곧장 포지션을 축소하고 일부 자산에 대해서는 반대로 '베팅'하기 시작한다.
즉, 자신들이 만들어 고객에게 팔았던 금융 상품(MBS)에 대해, 동시에 '이건 무너질 것이다'라는 전제로 베팅(숏)을 건 것이다. 이 베팅은 'CDS'라는 파생상품을 활용했다.
이중적인 거래는 시장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골드만의 논리는 단순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면 상품을 만들어주는 것일 뿐이다. 그 거래에 대해 회사의 트레이딩 부서가 따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별개다.”
결국,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되는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CDS 베팅 덕분에 막대한 손실을 피하거나 오히려 이익을 거둔다.
물론, 회사의 평판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고객에게 쓰레기를 팔고 동시에 그에 베팅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12. 2008~2009: 버핏의 투자와 은행 전환
위기 속에서 골드만삭스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바로 워런 버핏이다.
2008년 9월, 버핏은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한다. 시장은 이를 '신뢰의 표시'로 받아들이며 안도한다.
같은 시기, 골드만은 상업은행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연준의 보호망 아래 들어간다. 이는 더 강력한 규제를 의미했지만, 동시에 생존을 의미했다.
13. 2010~: 리테일 시장으로의 확장과 본질의 유지
금융위기 이후 골드만삭스는 오랜 시간 동안 명성 회복에 애를 쓴다. 그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리테일, 즉 일반 소비자 금융에서 찾는다.
2020년대, 로빈후드 같은 앱이 무료 주식 거래를 제공하면서 리테일 투자자들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하자, 골드만도 변화에 나선다. “우리도 대중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그들은 '마커스'라는 브랜드를 통해 대중금융에 진출하고,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로 확장한다.
하지만 본질은 여전하다. 기회가 있다면 누구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인다. '위기에서 회피하고, 호황은 누구보다 먼저 올라탄다. 이게 살아남는 자의 법칙이고 우리가 최고가 된 이유다'
#NARRATIVE
8.1976: 거스 레비 사망과 새로운 리더십
겉보기엔 막강해 보였던 거스 레비도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출장 중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회사 전체가 충격에 빠진다. 후임 계획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모두가 존경하던 단 한 명의 인물을 떠올렸다. 바로 존 화이트헤드였다.
9.1976~1983: 존 화이트헤드와 윤리강령의 시대
하버드 출신에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사령관이기도 했던 화이트헤드는 D-Day 작전에 참여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직감했다. "이제 골드만삭스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는 회사를 군대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모두가 동일한 윤리 기준과 행동강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는 어느 일요일 노트에 '우리가 우리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메모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훗날 골드만삭스의 '14가지 비즈니스 원칙''으로 이어진다. 그중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화이트헤드는 고객의 이익을 중심에 둔 업무 표준화를 추진했고, 이를 철저히 이행했다. 그리고 그는 직원들에게 가르쳤다. "언젠가 당신은 억만장자 고객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당신을 로비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화이트헤드의 리더십은 단순히 골드만삭스를 수익성 있는 회사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고객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회복하게 했다.
10. 2000~2006: 모기지 붐과 골드만의 본격적인 베팅
2000년대 초반, 미국 주택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는다. 모든 미국인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쫓으며 주택을 사들이고,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 꿈을 '상품화'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모기지 담보부 증권''이다. 골드만삭스도 이 거대한 흐름에 올라탄다. 단순히 중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본으로 대규모 포지션을 취하며 공격적으로 수익을 노렸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골드만은 2,030억 달러 규모의 MBS를 인수한다.
당시 CEO였던 행크 폴슨은 이러한 성과를 정점으로, 재무장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한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은 로이드 블랭크파인. 그는 트레이더 출신답게, 더욱 공격적인 수익 추구 전략을 펼친다. 골드만삭스는 이제 거의 '헤지펀드에 가까운' 회사로 변모해 있었다.
자기 자본으로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며, 클라이언트보다 자기 거래가 중심이 되는 구조였다. 고객 중심 철학은 점점 흐려졌고, 시장은 호황을 구가하며 이런 변화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11. 2007~2008: 서브프라임 위기와 골드만의 생존 전략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저신용자 대상) 대출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연체율이 치솟고, 수많은 모기지 회사들이 줄도산한다.
골드만삭스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위기를 감지했다. 2006년 말, 내부적으로 이미 모기지 시장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고, 곧장 포지션을 축소하고 일부 자산에 대해서는 반대로 '베팅'하기 시작한다.
즉, 자신들이 만들어 고객에게 팔았던 금융 상품(MBS)에 대해, 동시에 '이건 무너질 것이다'라는 전제로 베팅(숏)을 건 것이다. 이 베팅은 'CDS'라는 파생상품을 활용했다.
이중적인 거래는 시장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골드만의 논리는 단순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면 상품을 만들어주는 것일 뿐이다. 그 거래에 대해 회사의 트레이딩 부서가 따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별개다.”
결국,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되는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CDS 베팅 덕분에 막대한 손실을 피하거나 오히려 이익을 거둔다.
물론, 회사의 평판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고객에게 쓰레기를 팔고 동시에 그에 베팅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12. 2008~2009: 버핏의 투자와 은행 전환
위기 속에서 골드만삭스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바로 워런 버핏이다.
2008년 9월, 버핏은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한다. 시장은 이를 '신뢰의 표시'로 받아들이며 안도한다.
같은 시기, 골드만은 상업은행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연준의 보호망 아래 들어간다. 이는 더 강력한 규제를 의미했지만, 동시에 생존을 의미했다.
13. 2010~: 리테일 시장으로의 확장과 본질의 유지
금융위기 이후 골드만삭스는 오랜 시간 동안 명성 회복에 애를 쓴다. 그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리테일, 즉 일반 소비자 금융에서 찾는다.
2020년대, 로빈후드 같은 앱이 무료 주식 거래를 제공하면서 리테일 투자자들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하자, 골드만도 변화에 나선다. “우리도 대중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그들은 '마커스'라는 브랜드를 통해 대중금융에 진출하고,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로 확장한다.
하지만 본질은 여전하다. 기회가 있다면 누구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인다. '위기에서 회피하고, 호황은 누구보다 먼저 올라탄다. 이게 살아남는 자의 법칙이고 우리가 최고가 된 이유다'
#NARRATIV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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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가 높은 유가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 가운데서도, 일부 트레이더들은 이란 전쟁이 갑작스럽게 완화될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음
- 유가 옵션 시장 내 상승론은 최근 2개월 내 최저 수준으로 약화되고 있음. 이번주 대규모 풋 스프레드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하락 헤지 전략. 4월 중순 미약한 휴전이 합의된 이후 Brent에 대한 Put 거래량이 Call 거래량을 상회하고 있음. 또한, [그림 1]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내재변동성이 ATM 옵션 기준 4월 중순 수준.
- 트레이더들이 더이상 꼬리 리스크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증거. CIBC에 따르면 옵션 시장은 공포의 정점을 지나가고 있으며 포지셔닝은 점차 외교적 해결 가능성에 무게. 단기적으로 재고 감소와 가격 급등이 지속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보다 정상적인 수급 균형과 더 낮은 가격으로 돌아가가는 경로를 여전히 반영 중.
- 한편, Goldman Sachs는 4월 생산량이 하루 약 1,45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Morgan Stanley, Citi 및 JP morgan 등 월가는 높은 유가 수준을 모두가 전망하고 있음.
#NARRATIVE
- 유가 옵션 시장 내 상승론은 최근 2개월 내 최저 수준으로 약화되고 있음. 이번주 대규모 풋 스프레드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하락 헤지 전략. 4월 중순 미약한 휴전이 합의된 이후 Brent에 대한 Put 거래량이 Call 거래량을 상회하고 있음. 또한, [그림 1]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내재변동성이 ATM 옵션 기준 4월 중순 수준.
- 트레이더들이 더이상 꼬리 리스크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증거. CIBC에 따르면 옵션 시장은 공포의 정점을 지나가고 있으며 포지셔닝은 점차 외교적 해결 가능성에 무게. 단기적으로 재고 감소와 가격 급등이 지속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보다 정상적인 수급 균형과 더 낮은 가격으로 돌아가가는 경로를 여전히 반영 중.
- 한편, Goldman Sachs는 4월 생산량이 하루 약 1,45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Morgan Stanley, Citi 및 JP morgan 등 월가는 높은 유가 수준을 모두가 전망하고 있음.
#NAR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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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트레이더들은 워시의 연준이 금리 인하 전에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베팅/헤지 확대
- 중앙은행 금리 결정과 연동된 스왑 시장은 현재 연준이 완화에 나서기 전에 내년 4월까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가격에 반영.
- SOFR Future: 뽑은 [그림 1]은 SOFR Fly를 나타낸 것으로 주황색 선 (2027년 6월)이 하얀색 선(2026년 6월 + 2028년 6월) 밑으로 내려가며 지난 2주간 큰 폭의 차이를 확대하고 있음. 이는 향후 6~12개월 내에 연준이 금리를 다시 올릴 가능성을 프라이싱한 것.
- 이러한 금리 시장의 혼란은 정책입안자들이 금리 전망을 둘러싸고 점점 더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음.
#NARRATIVE
- 중앙은행 금리 결정과 연동된 스왑 시장은 현재 연준이 완화에 나서기 전에 내년 4월까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가격에 반영.
- SOFR Future: 뽑은 [그림 1]은 SOFR Fly를 나타낸 것으로 주황색 선 (2027년 6월)이 하얀색 선(2026년 6월 + 2028년 6월) 밑으로 내려가며 지난 2주간 큰 폭의 차이를 확대하고 있음. 이는 향후 6~12개월 내에 연준이 금리를 다시 올릴 가능성을 프라이싱한 것.
- 이러한 금리 시장의 혼란은 정책입안자들이 금리 전망을 둘러싸고 점점 더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음.
#NAR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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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튜더 존스: 추가 랠리
1. AI 주식을 더 샀다고 할 때, 그게 대형 하이퍼스케일러를 의미하나요? 아니면 반도체 쪽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매크로 트레이더이기 때문에 그냥 바스켓 단위로 매수합니다. 제가 단순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지금은 정말 미친 시기라는 겁니다. 저는 항상 역사적 선례를 찾는 걸 좋아하는데요.
1981~82년 PC 도입 시기의 생산성 혁명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1981년보다 1977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애플이 처음 등장했던 시점이죠. 그때가 일종의 ChatGPT 같은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1981년에 PC를 출시하기 전까지는 광범위한 상업적 채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2022년의 ChatGPT를 기준으로 본다면, 올해 1월 등장한 Claude Code가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PC 출시와 비슷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995년을 보면, 그때 비로소 인터넷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허용됐습니다. 아마 1995년 5월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몇 달 뒤 Windows 95가 출시됐죠. 그 두 사건은 모두 4년에서 5년 반 정도 지속된 생산성 혁명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굳이 지금을 특정 구간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아직 그 사이클의 50~60%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1~2년은 더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년 전에 우리가 이야기했을 때, 당신은 우리가 아마 1999년 후반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작년 10월 기준으로도 시장은 아직 40% 정도 더 오를 여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비유가 바로 그겁니다. 여전히 1999년 같은 느낌이라는 거죠. 재밌는 건, 밸류에이션이나 실적 등 모든 걸 비교해보면 지금이 딱 1999년 10~11월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산성 혁명 관점에서 보든, 앞으로 2년 더 가고 40%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든, 아니면 단순히 가격 흐름 아날로그만 보더라도 지금은 마치 1999년 4분기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아직 한 번 더 랠리가 남아 있습니다. 더 갈 수 있는 활주로가 남아 있다는 거죠.
2.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주식시장이 여기서 40% 더 오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주식시장 시가총액 대비 GDP 비율은 아마 300~350% 수준까지 갈 겁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죠. 그 시점에는 분명 어떤… 정말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이 오게 될 겁니다.
3. 아니면 브로커식 접근을 하는 거죠. 워런 버핏은 여전히 현금 3,800억 달러를 들고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저는 300억 달러만 들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네요. 아니, 제 말은… 분명 아직은 갈 수 있는 활주로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99년 비유를 좋아하는 이유는, 당시에는 Y2K 문제가 있었고 그게 연준(Fed)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걸 두려워했으니까요. 지금은 비슷하게 올가을 선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으로 들어오게 되죠.
4. 그가 금리를 인하할 거라고 생각하냐고요? 가능성 없습니다.
하지만 선거 전에 금리를 인상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지금 미국은 재정적자가 GDP 대비 6% 수준이고,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인프라 구축만으로도 GDP의 1%에 해당하는 지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유동성과 자극이 너무 많아요.
5. 그럼 당신이라면 금리를 올리겠다는 건가요?
적어도 인상을 고민은 해볼 겁니다. 물론 데이터를 봐야겠지만, 확실히 금리 인상 가능성을 생각은 하게 될 겁니다. 다만 선거 전에 그는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지금이 1999년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당시에도 Y2K 때문에 연준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NARRATIVE
1. AI 주식을 더 샀다고 할 때, 그게 대형 하이퍼스케일러를 의미하나요? 아니면 반도체 쪽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매크로 트레이더이기 때문에 그냥 바스켓 단위로 매수합니다. 제가 단순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지금은 정말 미친 시기라는 겁니다. 저는 항상 역사적 선례를 찾는 걸 좋아하는데요.
1981~82년 PC 도입 시기의 생산성 혁명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1981년보다 1977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애플이 처음 등장했던 시점이죠. 그때가 일종의 ChatGPT 같은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1981년에 PC를 출시하기 전까지는 광범위한 상업적 채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2022년의 ChatGPT를 기준으로 본다면, 올해 1월 등장한 Claude Code가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PC 출시와 비슷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995년을 보면, 그때 비로소 인터넷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허용됐습니다. 아마 1995년 5월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몇 달 뒤 Windows 95가 출시됐죠. 그 두 사건은 모두 4년에서 5년 반 정도 지속된 생산성 혁명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굳이 지금을 특정 구간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아직 그 사이클의 50~60%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1~2년은 더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년 전에 우리가 이야기했을 때, 당신은 우리가 아마 1999년 후반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작년 10월 기준으로도 시장은 아직 40% 정도 더 오를 여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비유가 바로 그겁니다. 여전히 1999년 같은 느낌이라는 거죠. 재밌는 건, 밸류에이션이나 실적 등 모든 걸 비교해보면 지금이 딱 1999년 10~11월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산성 혁명 관점에서 보든, 앞으로 2년 더 가고 40%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든, 아니면 단순히 가격 흐름 아날로그만 보더라도 지금은 마치 1999년 4분기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아직 한 번 더 랠리가 남아 있습니다. 더 갈 수 있는 활주로가 남아 있다는 거죠.
2.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주식시장이 여기서 40% 더 오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주식시장 시가총액 대비 GDP 비율은 아마 300~350% 수준까지 갈 겁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죠. 그 시점에는 분명 어떤… 정말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이 오게 될 겁니다.
3. 아니면 브로커식 접근을 하는 거죠. 워런 버핏은 여전히 현금 3,800억 달러를 들고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저는 300억 달러만 들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네요. 아니, 제 말은… 분명 아직은 갈 수 있는 활주로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99년 비유를 좋아하는 이유는, 당시에는 Y2K 문제가 있었고 그게 연준(Fed)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걸 두려워했으니까요. 지금은 비슷하게 올가을 선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으로 들어오게 되죠.
4. 그가 금리를 인하할 거라고 생각하냐고요? 가능성 없습니다.
하지만 선거 전에 금리를 인상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지금 미국은 재정적자가 GDP 대비 6% 수준이고,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인프라 구축만으로도 GDP의 1%에 해당하는 지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유동성과 자극이 너무 많아요.
5. 그럼 당신이라면 금리를 올리겠다는 건가요?
적어도 인상을 고민은 해볼 겁니다. 물론 데이터를 봐야겠지만, 확실히 금리 인상 가능성을 생각은 하게 될 겁니다. 다만 선거 전에 그는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지금이 1999년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당시에도 Y2K 때문에 연준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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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scafund HK CIO(유럽형 헤지펀드): "중동에서 빠지고 있는 유동성" UAE의 통화 스왑라인이 시장의 레버리지 피라미드 붕괴를 지연시킬 수 있음
지난 몇 년 동안 모두가 “내 AI 프로젝트나 프라이빗 크레딧, 프라이빗에쿼티, 부동산 프로젝트를 뒷받침해줄 중동 국부펀드나 중동 투자자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중동은 측정 방식에 따라 약 6조~9조 달러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매우 부유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UAE가 연준이 아니라 미국 재무부에 스왑라인을 요청했고 실제로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전형적인 “자산은 많지만 현금은 부족한” 상황처럼 보입니다. 진짜 리스크는 중동 자금이 미국 국채를 파는 것이 아닙니다. 국채는 연준이 언제든 다시 매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비유동성 자산을 팔기 시작하는 상황입니다. 기존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은 기본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른 상품을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파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그 유동성을 공급해줄 핵심 투자자 역할을 하기로 기대됐던 것이 중동 자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자기 청구서를 내기 위해 스왑라인까지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좋아, 네 프로젝트에 20억 달러 더 넣어줄게”라고 나서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중동 자금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면 유동성은 마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실제 자산 매도까지 시작된다면 mark-to-market 손실은 매우 고통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 구조를 젠가 타워처럼 보고 있습니다. 중동 자금은 수많은 프로젝트의 cornerstone investor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위에 레버리지 피라미드가 쌓여 있습니다. 그 핵심 블록을 빼버리면 레버리지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설령 당장 붕괴하지 않더라도 결국 문제는 “누가 다음 매수자가 될 것인가”입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정부가 새로운 cornerstone investor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글로벌 부채는 353조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 정부는 연료 보조금이나 에너지 가격 상한제 같은 재정 완충 정책을 시행해왔고, 그 결과 차입 규모는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습니다.
제가 항상 위험하다고 보는 순간은 정부가 다른 나라의 통화, 특히 달러로 돈을 빌릴 때입니다. 물론 한 사람의 부채는 다른 사람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는 외국인들이 미국 국채를 파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그것을 다시 사들이면 수천억 달러의 이자 지급이 미국 경제 내부에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원했던 것도 결국 중동 자금이 미국 주식시장이나 미국 국채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은 인덱스 펀드들이 Mag7을 사고, 주가가 오르고, 기업들이 돈을 번 뒤 자사주를 매입하는 자금 순환 구조가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돈이 실제 경제로 들어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인플레이션성 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달러 부채가 미국 내부에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합니다. 하지만 신흥국이나 라틴아메리카처럼 외부 국가에 존재할 경우 환율 변동이 매우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채는 상환을 강요받는 순간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핵심 이야기가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서 환율이 어떻게 움직이게 될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NARRATIVE
지난 몇 년 동안 모두가 “내 AI 프로젝트나 프라이빗 크레딧, 프라이빗에쿼티, 부동산 프로젝트를 뒷받침해줄 중동 국부펀드나 중동 투자자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중동은 측정 방식에 따라 약 6조~9조 달러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매우 부유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UAE가 연준이 아니라 미국 재무부에 스왑라인을 요청했고 실제로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전형적인 “자산은 많지만 현금은 부족한” 상황처럼 보입니다. 진짜 리스크는 중동 자금이 미국 국채를 파는 것이 아닙니다. 국채는 연준이 언제든 다시 매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비유동성 자산을 팔기 시작하는 상황입니다. 기존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은 기본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른 상품을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파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그 유동성을 공급해줄 핵심 투자자 역할을 하기로 기대됐던 것이 중동 자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자기 청구서를 내기 위해 스왑라인까지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좋아, 네 프로젝트에 20억 달러 더 넣어줄게”라고 나서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중동 자금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면 유동성은 마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실제 자산 매도까지 시작된다면 mark-to-market 손실은 매우 고통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 구조를 젠가 타워처럼 보고 있습니다. 중동 자금은 수많은 프로젝트의 cornerstone investor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위에 레버리지 피라미드가 쌓여 있습니다. 그 핵심 블록을 빼버리면 레버리지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설령 당장 붕괴하지 않더라도 결국 문제는 “누가 다음 매수자가 될 것인가”입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정부가 새로운 cornerstone investor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글로벌 부채는 353조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 정부는 연료 보조금이나 에너지 가격 상한제 같은 재정 완충 정책을 시행해왔고, 그 결과 차입 규모는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습니다.
제가 항상 위험하다고 보는 순간은 정부가 다른 나라의 통화, 특히 달러로 돈을 빌릴 때입니다. 물론 한 사람의 부채는 다른 사람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는 외국인들이 미국 국채를 파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그것을 다시 사들이면 수천억 달러의 이자 지급이 미국 경제 내부에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원했던 것도 결국 중동 자금이 미국 주식시장이나 미국 국채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은 인덱스 펀드들이 Mag7을 사고, 주가가 오르고, 기업들이 돈을 번 뒤 자사주를 매입하는 자금 순환 구조가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돈이 실제 경제로 들어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인플레이션성 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달러 부채가 미국 내부에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합니다. 하지만 신흥국이나 라틴아메리카처럼 외부 국가에 존재할 경우 환율 변동이 매우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채는 상환을 강요받는 순간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핵심 이야기가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서 환율이 어떻게 움직이게 될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NAR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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